애천/애족/애인사상

안중근은 교육가이며 애국계몽 운동가로 민족정기의 화신이며 천주교를 전도하는 종교사상가로 그리고 일제의 군경과 직접 맞서 싸운 의병지휘관으로 항일운동에 헌신하였으며 나아가 우리나라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처단한 위인으로서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였다.

안중근의 이러한 실천적이고 과감한 의거의 결행은 ‘동양평화론’이라는 그의 독특한 사상과 그의 애천(愛天), 애족(愛族), 애인(愛人) 의 3애정신 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이다. 3애정신은 유교사상, 개화사상, 기독교사상으로 복합된 사상체계다.

특히 민족 항일운동에 몸바친 애국애족의 정신은 그가 죽음을 초개와 같이 생각하고 여러 번 생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긴 과정에서 싹텄던 것이다.

첫 번째 소년시절 서당친구들과 봄꽃놀이를 갔다가 천애절벽에서 꽃을 꺾으려다 실족, 떨어졌으나 나뭇가지를 붙들고 살아났으며
두 번째 친구 6~7인과 노루사냥을 갔다가 구식 6연발총이 발사가 안 되어 조사해보니 총구멍에 탄환이 박혀 쇠꼬챙이로 이를 쑤셔 총알을 빼내는 순간 꽝 하고 터지면서 쇠꼬챙이가 오른손을 뚫고 하늘로 솟았는데 이 때의 놀라움은 꿈에서도 진땀을 흘렸다.
세 번째 만인계장으로 채표회사 출표기계의 고장이 발단이 되어 군중들이 몽둥이와 돌을 던지면 달려들어 목숨이 위태로울 때 허봉(許鳳)이라는 의인(義人)에 의하여 탈출할 때이고
 네 번째 의병전쟁 중 참패하여 초근목피로 20일동안 연명해 가면서 연해주로 귀환할 때와
다섯 번째1908년 연해주에서 계몽활동 중 어느 산골짜기에서 6~7인의 일진회 회원을 만나 그들에 의하여 구타당하고 탈주한 경우다.

이러한 생사의 고비를 넘기면서 그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청년으로서의 건전한 양식을 갖게 되었다. 이와 함께 안중근이 자라오면서 그가 갖게 된 애천(愛天), 애족(愛族), 애인(愛人) 정신은 동양평화사상에 귀착되어 자신의 삶을 일체화 시킨 그의 독특한 동양평화론을 제창하게 되었다고 본다.